상자

습작 2018. 5. 21. 23:28



a가 만드는 것이 상자인 줄로만 알았다. 작업실로 쓰는 방 한켠에 놓여 있던 그 커다랗고 길쭉한 상자. 책을 끼워넣고 잡동사니를 올려놓을 선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a는 안쪽에 '아똘'을 끓일 때 쓰는 옥수수 가루를 사오더니 풀을 쑤어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문화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그저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한 과정이라고만 여겼다. 한겹, 또 한 겹. 꼼꼼하게 붓칠을 하는 a를 바라볼 때마다 참 시간이 많이 걸리는구나, 했을 뿐. 도와줄까? 하는 내 말에 아니라고 했을 때도, 더 칠해야 하냐며 놀라는 나를 보고 그가 웃었을 때에도 나는 그 상자를 내 손으로 태워버리게 될 줄은 몰랐다.


                                                                  200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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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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