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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5.23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3. 2018.05.21 상자
  4. 2018.05.21 외래어 유감
  5. 2018.05.20 Psychiatrist
  6. 2018.05.16 곰인형에 얽힌 아픈 기억
  7. 2018.05.15 Pa, My friend
  8. 2018.05.12 부조리극
  9. 2018.05.12 인천
  10. 2018.05.12 기억

습작 2020. 8. 26. 04:39


촉촉한 것이 코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느낌에 실눈을 뜬다.
의자 위에서 잠든 야옹이가 어느 새 베게맡에 와 있다. 
코를 내 코에 대고 흠흠 냄새를 맡은 뒤 그르릉 그르릉. 
비몽사몽,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정월 초열흘에 태어난 아이는 윗목에 놓였다. 
스무살 무렵까지 겨울이면 손이 시퍼랬다. 
목 아래 받쳐준 수건 위 젖병을 빨다가 잠이 들었다. 


남동생과 투닥거리는 나를 방으로 부른 할머니는 손목에 칼을 들이댔다. 
손목쟁이 한번 더 펄렁거리면 잘라버리갔어. 
지금 자르란? 


마당 한구석 흰둥이 집에 들어가 잠이 든다. 
합판에 빨간 장판으로 지붕을 댄 집은 아늑했다. 
새끼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틈을 파고들면 스르르 눈이 감겼다. 
옆에 있어도 뭐라 하지 않는 흰둥이가 좋았다. 


어느날 장독대 위

내가 들어가 놀던 커다란 대야에 

흰둥이가 입을 벌린 채 물에 잠겨 있었다. 
옅은 피비린내가 났다. 
속이 울렁거렸다. 


빨간 지붕 집에 혼자 기어들어간다. 
까무룩,  잠이 든다.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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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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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 어제 안젤라가 저 때문에 울었어요. 무슨 얘기 끝에, 어릴적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차분한 사람이예요. 제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 바람에 저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죠.

' 여기가 너무 아파요.'

안젤라는 길다란 손가락을 포개어 가슴을 누르며 저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왜요?'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아픈 얘기를 하는데 왜 저 사람이 가슴이 아프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던 같아요.

그 순간이었어요. 그니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얼굴에 커다란 파스를 붙이고 학교에 다녔다는 얘기를 하다가 쳐다보았더니 눈이 빨개져 있었어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니가 나 때문에 우는 것 같아서,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이없게도 왜냐고 묻는 제 말에 급히 크리넥스를 한장 뽑더니 눈가를 누르며 흑, 한동안 흐느꼈습니다.

나 때문에 저사람이 우는구나 싶어서 많이 미안했어요.

 

'그렇다고 우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저 때문에 울지 말라고 하고 싶었어요.

'필요해서 우는 게 아니라, 당신의 아픔이 저에게도 전해져서 우는 거예요.'

그 순간에도 여전히 이성이 우위에 있는 저는, '혹시 내가 감정표현, 감정이입을 잘 하지 못해서 암담함을 느끼고,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생각에 울음을 터뜨린 건 아닐까 싶었어요. 어이없게도. 하지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랬어요.

네네. 제가 좀 그렇잖아요. 좋아한다, 싫어한다, 힘들다, 어렵다. 슬프다, 기쁘다 이런 말 잘 못하잖아요.

 

*

 

그래 이놈아, 많이 미안했겠다!

 

나는 가끔씩 왜 그 냥반이 나한테 그랬을까 싶다. 사진 보면 그 당시 가정부가 셋이나 있고 우리 아빠는 영화관의 영사 기사였어.

죽을 고비를 세번쯤 넘긴 것 같아. 두번째로 입양간 집에서였어. 나는 지금도 물에 잠긴 고기는 먹기 싫어. 첫번째로 입양간 집에서는 먹을 게 풍족하지 못했어. 두번째 집에서는 잘 먹이는 편이었는데 무 소고기국이 나왔는데 거기 있는 소고기를 다 건져먹고 급체를 했어.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해서 날 입양보낸 이모란 사람을 엄마가 불렀는데, 그냥 내다 버리라고 했지. 다행히 우리 엄마가, 이 양반이 정이 있어서 동네 돌팔이 한의사를 불렀어. 그 사람이 어떻게 손을 써서 살았지.

두번째는 쥐약때문이었어. 우리 집을 들어서면 대문이 있고 대문을 열면 중간문, 다음엔 디딤돌이라고 그러나? 그걸 딛고 올라가면 마당이 있고 그 다음에 마루가 있거든. 왼쪽에 커다란 쌀통이 있었어. 다라이로 된 통 위에 나무를 얹고 또 그 위에 쌀을 얹어놨었어.

밖에 갔다 왔더니 보름달 빵이 거기 있는거야. 나는 학교에서 주는 곰보빵을 더 좋아했지만.

배고픈데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먹었지. 그리고는 기억이 안나. 위세척 해서 살아났겠지.

 

사람이, 처음 맞으면 공포스럽지만 계속 맞으면 내성이 생기지. 그래, 때리나보다 하는 덤덤함. 맞는델 계속 맞게되지.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하도 맞다보니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 내가 그냥 그때 죽어버렸어야 하는데. 쥐약 먹었을 때 가버려야 했는데.

 

으아 선배. 쥐약 먹으면 얼마나 힘들게 죽는다구요. 내장 다 녹고 피똥 싸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그게 어른이니까 그렇지. 쥐약 먹고 까무러졌을때는 아무것도 몰라!

내 인생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꾸 그때 생각이 나. 그때 죽어버렸으면 이런 꼴 안보고 살아도 되는데.

 

그때 안 죽은게 다행이에요. 그랬으면 못 만났을 뻔 했잖아요.

 

안 보고 싶은 사람이 몇 있지. 그때 끝냈더라면.

내 친구가 그러더라. 참 내 팔자가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디 경치 좋은데서 죽을라고 그랬다니까, . 너 그러면 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그냥 살아! 하더라. 얼마나 끔찍해 다시 태어나서 처음부터 다시 살려면.

 

그러니까요. 그냥 한번에 살고 끝내는게 낫죠.

 

뭐 이러냐. 누구는 어린 시절이 제일 행복한 때라는데 우리는 왜 그런거야, 대체! 두들겨 맞고 굶고 말야.

 

쥐구멍에도 볕들 날 온다던데. 우리도 좋은 날 오겠죠. 어릴때 안 좋았으니 나이 들어 차차 좋아지겠죠.

 

내가 나이가 몇인데. , 젊었을 때 돈 많이 벌어놔라. 여자들은 돈 벌 수 있는 나이가 정해져 있어. 남자들은 늦게까지 일하지만, 여자들은 그 시기 지나면 못 벌어.

 

난 니가 부럽다. 놀 수도 있고. 편해보인다.

 

부럽긴요 선배. 저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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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습작 2018. 5. 21. 23:28



a가 만드는 것이 상자인 줄로만 알았다. 작업실로 쓰는 방 한켠에 놓여 있던 그 커다랗고 길쭉한 상자. 책을 끼워넣고 잡동사니를 올려놓을 선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a는 안쪽에 '아똘'을 끓일 때 쓰는 옥수수 가루를 사오더니 풀을 쑤어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문화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그저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한 과정이라고만 여겼다. 한겹, 또 한 겹. 꼼꼼하게 붓칠을 하는 a를 바라볼 때마다 참 시간이 많이 걸리는구나, 했을 뿐. 도와줄까? 하는 내 말에 아니라고 했을 때도, 더 칠해야 하냐며 놀라는 나를 보고 그가 웃었을 때에도 나는 그 상자를 내 손으로 태워버리게 될 줄은 몰랐다.


                                                                  200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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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유감

습작 2018. 5. 21. 23:09

새벽에 본 '통일 전망대' 러시아스러운 인형극-특유의 느낌이랄까. 미국쪽의 것과는확연히 다른 인형들의 얼굴 생김, 재료는 부족하지만 부족함을 손으로 때우는, 많은 노동력을 들여 여러 컷을 찍은 후 이어붙인 방식, 교훈적인 내용-과 북한말 한마디. 귀엽게 생긴 인형들이 내게는 익숙한 평안도 사투리로 말을 하니까 웃겼다. 귀엽기도 하고.'전구''형광등'에 관한 믿기지 않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지만, '햄버거'를 이북에서는 뭐라고 할까? '고기 겹빵' 이다. .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우리 말로도 충분히 외래어를 바꿔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굳이 외국어를 그대로 쓰지 않더라도. 그러면 샌드위치는 뭐라고 하지? 샌드위치도 고기겹빵인데. 햄버거는 둥근 고기겹빵, 샌드위치는 네모 고기겹빵. 아님 두꺼운 고기겹빵, 얇은 고기겹빵이라고 하면 안될까?

티브이를 보면서, 자주 놀란다. 토씨와 맺음말만 빼면 다 한자와 영어인것 같아서. 그것도, 요즘에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기어코 외국어를 갖다 쓰는 것 같아서. 핑크색 팬츠를 매치시켜 입으면 한결 엘레강스하죠. 분홍색 바지를 같이 입으면 한결 우아하죠. 그러면 안돼? 따지고 보면 이것도 한자들인데, 순수 우리말을 발굴해 내지는 못할 망정...심지어 얼마전에 '빅한' 셔츠라는 얘기도 들었다. 왠 빅한? 한글날 특집이라며 이정동 디자이너가 레이싱카에 태극기와 함께 한글 흘림체를 입힌 것을 보았는데, 아나운서의 맺음말 때문에 김이 팍 샜다. 코리아팀이랜다. 젠장.                                                                     이러다가 대한민국은 없어지고 코리아만 남는 거 아냐?

'나는 한국인이다' 라는 글귀와 태극기를 단 한국출신 스웨덴인 입양아 최명길. 자신의 이름을 '최고의 밝은 길'이라 풀이하며 친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자신이 걷는 길과 딱 맞는 이름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은 길하다라는 뜻일 가능성이 더 많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한국 국적으로 레이싱대회에 참가하면서까지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눈물겹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우리말 지키기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글과 더불어 다른 우리것들도.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게 해 주는 그 무엇.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통일이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우리말은 참으로 풍요로워질 것 같다. 지금 홍수처럼 들어와 사용하는 외래어도 북한의 풍부한 우리말로 대체되고, 양쪽의 언어가 조금씩 섞여가면서 새로운 단어들로 풍부해져서 더욱 발전하겠지.          

    러시아어-조선어 사전에는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얼음보숭이'가 있다. 처음에는 얼음보숭이가 뭐야? 하고 촌스럽다고 웃었지만, 왜 아이스크림은 세련되고 얼음보숭이는 촌스럽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북한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있는데. 부끄러워 해야 한다. 우리말로 바꿔보려는 노력도 없이, 편하다는 이유로 생각없이 외래어를 쓰는 행동을. 안쓰면 자꾸 사라지는 것이 말인데, 자꾸 쓰고 만들어 내야 한다. 발굴해 내야 한다. 가끔 슬픈 단어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슬픈 단어 '도우미'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처음에는 참으로 순수(?)하게 출발했지만-이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것이 대전엑스포였던가 그랬다. 행사진행요원을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이제는 변질되어 노래방 도우미, 가사도우미, ** 도우미, 심지어 사정도우미(!)까지 생겨났다. 도우미라는 말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도우미'를 그저 그런 하급 단어의 이미지를 가지게 했다는 거다. 기껏 찾아냈더니 이상한데다 쓰고 있다. 언제 나온 방송인지는 모르겠지만 팔도 사람들이 나와 사투리로 어떤 단어를 설명하면 그걸 듣고 맞추는 프로가 있다. 며칠전에 봤지만 한창 활동중인 아나운서를 갓 입사한 신인이라고 소개했고,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앳되 보이는 걸로 봐서는 몇년 전에 만든 거구나, 생각할 뿐. 제주도 사투리에 강원도, 부산,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 제주도를 빼고는 비교적 잘 알아들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과 달리, 충청도 빼고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강원도의 '-래요'를 비롯, 충청도의 '-', 전라도의 ' -했어라우' , 경상도의 '-' 같은 지역별 종결어미와 특유의 억양 말고도 사투리는 각자의 단어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모르는 단어가 어찌나 많던지.우리말이 풍부해지려면 사투리를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앙정부, 권력층 중심 서울 중심의 표준어 말고도 각지에서 내려오는 말들을 좀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부추-정구지-. 부추전 정구지찌짐 솔부침. 얼마나 다양한가 말이다. 사투리로 우스갯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에 '개고기 드십니까?'를 충청도 사투리로 단 두자로 줄일 수 있다는 걸 봤다. '개 혀?' 보고 미친듯이 웃었는데, 정작 충청도 출신인 친척분은 그게 아니랜다. 개고기는 '가이고기'이고, 드십니까는 '먹유?'니까 '가이고기 먹유?' 가 맞는 말이랜다.                                            

내가 영어를 써 놓고도 문법적으로 완벽한지 알 수 없듯이(영어가 모국어는 아니니까), 사투리에도 그 지역 사람이 아니니까 맞는 말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나 보다. 우리말 만큼 사투리가 풍부한 언어가 있을까. 영토는 좁지만, 높은 산과 바다 때문에 지역 언어가 더 발달했던 듯 하다. 발음도 조금씩 다르다. 이북(북한보다는 이 말이 더 자연스럽다)에서는 ''''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남한 사람들에게는 '거저''고조'로 들리는 모양이다. '오로지'와 같은 단어에서는 ''가 러시아어의 연자음 발음처럼, 약간은 'z'를 발음하는 것처럼 혀가 우리말 ''에서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지 않나 싶다. 연변쪽에서는 '' '''' 라고 한다. 이것도 ''''에 가깝게 발음하는 현상에서 온 걸까? 만약 사투리를 배울 수 있다면, 제주도 사투리를 배워보고 싶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언어. 여성의 입김이 쎈 제주도. 뭔가, 여성성이 많이 살아있는 언어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말로 원샷은? '나불게'

해외여행은 금지되고 제주도가 제일 멀리 갈 수 있는 곳이었을 때, 이국적인(?)사진으로 가득찬 제주도 안내 책자 뒷편의 제주도 사투리 설명을 주의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말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여덟살이나 되었을까. 처녀-비바리, *-강알, 할머니-할망, 할아버지-할아방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단어 말고도 아래 아로 가득찬 문장들도 만히 있었다. 마치 해외여행 가이드북의 '언어편' 처럼. 얼마입니까-얼마우꽈? 그렇게-경 그렇게 하셨습니까-경 햄수꽈? . **마씨.

제주도 수학여행 갔을 때. 완전히 두 가지 말을 하는 식당 종업원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저기요... 나물 좀 더 주세요, 했을 때는 네. 하며 표준어를 쓰더니, 주방 입구에 대고 '할망, **좀 더 줍서!' 하는 것이었다. 정말 배우고 싶은 언어(?). 제주도 말은.


                                                           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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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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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iatrist

습작 2018. 5. 20. 16:29



맥주를 다섯병이나 마셨다. 김치전을 얻어왔는데(혼자 사는데, 음식은 잘 해먹느냐고 하면서 줬는데, 안에 한판 하고 찌꺼기가 남아있다. 먹다 남은 듯한 부분은 안 먹었다. 당근주스-혹은 V8- 를 따라주었는데, 한모금 마시고 준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출출하니까 그냥 저녁 겸 때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치전을 데우고, 좋은 안주가 있으니 한잔 해야지..하며 맥주를 꺼냈다. 알러지 때문에 목이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안주가 모자라면 안되니까..하며 냉장고 윗칸의 굳어져가는 모짜렐라 치즈를 같이 굽고, 소세지를 조금 잘라서 접시에 같이 담았다. 쥐포도 하나 구웠다. 안주는 꽤 많은 양이었다. 맥주 한병을 다 마셔도 안주가 남았다. 남은 거에 같이 먹지 뭐 하며 또 한병을 꺼내온다. 허니 머스터드맛이라고 써 있는 니블링Nibling도 먹는다.

마른멸치에 고추장도 먹는다. 맥주를 더 꺼내온다. 다섯병째를 거의 다 마셔갈 무렵 나도 모르게 책상 앞에 앉아서 잠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 김 빠지면 안돼지.. 버리면 아까우니까..하며 남은 맥주를 들이킨다. 꿀꺽 꿀꺽. 술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알콜의, 뜨거운 기운이 숨으로 훅훅 뿜어진다. 술을 마시면 시간이 잘 간다. 내가 혼자 있다는 것도, 같이 마실 사람 없이 혼자 마신다는 것도, 정말 이 상황이 비참해서 죽고 싶다는 것도, 아직 학기를 끝내려면 남은 과제를 해야 한다는 것도 다 잊을 수 있다.

그저께인가는 방 청소를 했다. 전기장판과 널려있는 책들과 가방과 신문 따위를 몽땅 들어내어 옆방에 갖다두고는 swifter로 바닥을 닦고 빗자루로 쓸어낸 다음 물기 있는 Swifter로 한번 더 닦았다. 방이 텅 빈듯 했다. 신문지와 책이 쌓여있는 화장실도 닦았다. 습기로 구깃구깃해진 신문지를 걷어내어 차곡차곡 간추려 두고 책을 방 책꽃이에 꽃은 다음 바닥을 닦았다. 마치, 누군가 나를 찾아올 것처럼. 아무도 오지 않을것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올 것처럼 샅샅이 구석구석 먼지를 집어냈다.

배가 고파왔다. 뭘 먹을까. 냉장고에 있는 이북식 김치밥을 하고 남은 돼지고기를 빨리 먹어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다. 오래되어 색이 변해가는 목살을 먼저 굽는다. 일단 구워두면 나중에라도 먹을 수 있겠지. 사온 지 얼마 안 된 삼겹살과 확연한 색 차이가 난다. 물론, 맛과 냄새도 차이가 있다. 배추김치가 없어서 나중에 대신 구울 요량으로 총각김치를 잘게 썰었다. 생각보다 썩 괜찮았다. 껍데기와 비계가 두툼하게 붙어있는 삼겹살은 정말 혼자 먹기 아깝다. 아래층은 벌써 밥을 다 먹었다고 한다. 방으로 가져와서 먹는다. 이럴때 막걸리가 있어야 하는데. 대신 소주를 한잔 하기로 한다. 냉장고에는 언젠가 마시다 둔 소주가 플라스틱 병 안에 두 모금쯤 남아있다. . 오래되어 사카린 냄새와 알콜 냄새가 마구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역시 소주는 아무 음식이랑 잘 어울린다. 특히 삼겹살이랑. 두세모금씩 남아있는 소주를 세병쯤 마셨다. 그래봤자 큰 병으로는 반 병 정도다. 술이 모자란다. 이런.. 맥주라도 마셔야지. 입가심 할겸. 맥주가 시원하다. 룸메이트가 남기고 간 양상치에 고기 한 점을 올리고 김치조각과 고추장 조금을 곁들여 씹고는 술을 한잔 마신다. . 이런 술을 혼자 마셔야 한단 말이지. 젠장. 뭐 사는게 이러냐...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주말인데. 한국 같았으면 친구들이랑 한잔 했겠지. 백호 선배집 생각이 난다. 안주가 뭐였더라.. 골뱅이였나. 여러 사람이 마시는 소주란 정말..

맥주 세 병을 마시고서야 그만 마셔야지 하는 생각이 난다. 섞어마시다니. 내일 속이 장난 아니겠군. 청소하다가 발견한 레종 담배를 꺼내어 밖에 나가 한대 피운다. 이놈의 담배는 끊었어도 술을 마시면 가끔 생각이 난다. 옆집 뒷마당이 시끌시끌하다. . 아까 제럴드 아저씨가 아줌마 생일이라고 오라고 했었는데. 그릴에서 고기도 구울꺼고 스카치랑 보드카랑 있으니 마시러 오라고 그랬었다. 이 상태로는 못가겠다. 너무 취했다. 취한채 다른 사람 집에 간다는 건 미안한 일이다.

대모님께 전화가 왔다. 우리 아저씨 소주 마시고 싶다고 해서 네 병이나 사왔어. 건너 와. 저 방금 술 마셨어요. 청소하다가 밥 먹으면서 맥주 두 병 마셨는데, 안 깨네요. ? 맥주가 너한테 술이냐? 왜 취하고 그래? 그러게요.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취하네요. 지금 운전하면 안될 것 같아요. 좀 깨고 갈께요. 그래. 천천히 건너와.

술을 좀 깨고 운전할 수 있을만큼이 되었을때 가볼까 싶었는데 전화가 왔다. . 난데. 아저씨가 들어오시긴 했는데 피곤하다고 그러시네. 오늘은 좀 그렇다. 그래도 오고 싶으면 와. 내가 주말에 갈데가 없는 걸 아는 대모님의 말씀이다. 아니예요. 오늘만 날인가요 뭐. 나중에 갈께요.. 그래. 내일 오던지. 또 전화할께.

옆집은 파티로 여러 사람이 시끌시끌하고, 나는 야옹이와 대숲에 가린 달을 보았다. 저 흰게 달이긴 한데. 무슨 모양이지? 상현? 초승달? 술을 마신게 후회가 됐다.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두 건이나 초대 기회를 놓치다니.

시간만 잘 간다. 배고프다고 고기를 구울 때가 대여섯시경이었는데 지금은 아홉시가 넘었다. 사람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알겠다. 잊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현실을. 그리고 시간은 더 빨리 가기 때문이다.

뭐 작은 악세사리라도 하나 갖다줘야겠다. 그래도 생일이라는데. 참석은 못하더라도.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안 가서.

카운슬러가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술을 마시면서, 멈출 수 없다거나 언제 멈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지금이 바로 그런때가 아닌가. 술을 마시고 멈추지 못하는 때. 조금만 조금만 하며 멈추긴 하지만-술은 홀수로 마셔야 한다는 이상한 버릇- 멈췄을때는 너무 많이 마셔서 그만 마셔야 할 때라는 것.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느 것이든 내게 할 말이 있어요? 내 속에 너무 많은 것이 쌓여온 것 같아요. 발산하지 못하고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 일을 계기로 터져나와서 나를 삼켜버리는 거 같아요.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풀어가면 나도 정상이 되지 않을까요.

순전히 정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아침에 만난 의사는, 자꾸만 나에게 약을 권했다. 물론, 심리상담으로 당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약을 먹으면 우울한 기분과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사라질껍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아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아주 소수일 뿐입니다. 학생 보건소에서 아주 싼 값에 약을 살 수 있을꺼예요. 일단 먹어보고 나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약 먹다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누군가에게 말하도록 해요. 나에게 전화해도 좋습니다.

그 정신과 의사는 정말 많은 질문을 던졌다. 꼬치꼬치 캐물었다. 몇 살이죠? 이름은요? 어디서 태어났어요? 언제 미국에 왔죠? 전공은요? 학점은 얼마나 됩니까? 가부장에 대해 말해보세요. 어머니에 대해 말해봐요. 동생은 어디에 있죠?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구요. 할머니는 어떻죠? 어린시절은 어땠습니까?

벗어진 이미와 약간 벌어진 앞니.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초끼 떨지 않고(내 고정관념일지도) 그래. 힘들었겠네. 충격이 컸겠어요.. 하며 내 말을 듣는 저 의사.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다시 낱낱이 내 속을 털어내야 했다.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먼지 쌓인 얘기까지도. 그러면서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상담받는 모든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인데, 자신을 성적으로 어떻게 규정하겠습니까? 게이? 일반? 바이섹슈얼? 어느 성에 더 매력을 느낍니까?

오래전부터, 괜찮은 놈 나타나면 남자에게도 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채 이반으로 규정했고 심지어는 여자 애인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잘 모르겠어요. 섹슈얼한 것들. 그냥, 여자들이랑 있을때 더 편해요. 남자들보다는.

섹슈얼. 잘 모르겠다. 사랑을 느끼는 감정이 성적인 것만은 아니듯이. 운동 많이 해서 몸매 좋은 남자들 보면 한번 만져보고 싶기는 한데. 그 이상은 아니다. 여자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좀 더 복잡하다. 동성으로서의 동질감. 자매애. 아름다운 것을 볼때의 놀라움과 애정과, 우정의 느낌과 그 밖의 여러 가지들이 섞인 그런 감정들.

서른.서울근교 출생입니다. 러시아 학과 졸업반입니다. 부모님은 늘 바빴어요. 그래서 같이 보낸 시간이 별로 없죠. 가부장은 나를 자주 때렸어요. 술마시고 들어와서는 학교에서 빌려 온 잡지에 튀김 봉투를 올려놓았죠.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두들겨 맞았어요.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냐고. 그런 식이죠. 2년전, 가부장이 퇴직하고 나랑 같이 살아야 했을 때, 그는 나를 전통적인 한국 여자가 되길 원했어요. 언제나 거기 있다가 밥 차리고, 청소하고 고분고분 말 잘듣는 그런 애 말이죠. 사실은 그때가 마지막 학기여서 나는 집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이번에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숙제도 많은 편이라서 가부장이 원하는 전통적인 애가 되기에는 너무 벅찼어요.

고지서 때문에 말다툼을 하다가, 내 목을 졸랐어요. 내 목을 조르고는 머리를 벽에 쾅쾅 찧었죠. 그때 깨달았죠.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예전에 나를 때릴때면 늘 하던 말. 나는 네가 바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다 니가 잘 되라고 때리는 거야, 라는 말. 해당사항이 없는 거잖아요. 그 때 나는 이미 스물 여덟이었으니까. 그래서 한국에 갔어요. 잠시 이곳을 벗어나 쉬면 괜찮아질꺼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학기이고 두달이 남았을 뿐인데 수업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작년 여름에 돌아왔는데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요. 밖으로 한발짝도 안 나가고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자살충동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살았어요.

. 있습니다. 한번은 동네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갔을때죠. 난 여덟살이었어요. 그때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어요. 열 두살쯤 되어서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고 나서야 알았죠. 한번은 가부장이었어요. 일곱살쯤? 잘 기억이 안 나요. 답답했다는 것. 할머니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는 것 뿐.

할머니는 언제나 남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날 잘 챙겨주지 않았죠. 부모님이 섬으로 가고 할머니와 셋이 살아야 했을때 영양실조에 걸렸어요. 손바닥 피부가 자꾸 벗겨져서 피부과에 갔는데 영양실조라고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있는 섬에 살게 되었죠. 먹을 것이 많았어요. 나무에 열매도 있었고,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었죠.

섬으로 가는 길목, 항구가 있는 도시에 큰아버지 집이 있었는데 거기 서서 보면 간판을 하나도 읽을 수 없었어요. 글이 너무 흐리게 보여서 눈이 나쁘다고만 생각했었죠. 섬에서 살다가 그곳에 간 어느날 간판 글씨가 다 보이는 거예요. 아주 작은 것까지.

놀라웠죠. . 그럼 그때 읽는 걸 배운 건가요? 아니요. 읽는 법을 배운 건 훨씬 전이예요. . 그렇군요..

일주일 후에 다시 봅시다. 약이 어땠는지 그때 다시 얘기하기로 해요. 작은 수첩같은 것에 몇자 적더니 준다. 아래층에 학생 보건소에 가져가세요.

처방전을 주면 바로 받을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는데. 월요일 네 시 이후에나 찾으러 오라고 했다.

약을 먹는 신세가 되어버렸군. 엉뚱하게도, 금연패키지Quit smoking kit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냥 주는게 아니라 한참을 기다려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담배를 많이 피워요? 평소에는 잘 피우지 않는데, 한번에 피우면 많이 피워요. 이참에 한번 끊어보려구요. . 단번에 끊기 힘들죠. 이 안에 들어있는 것들에 대해 설명해 줄께요.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마다 손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장난감. 이건 입에 물고 있을 수 있는 작은 막대. 차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되죠. 게임 같은 걸 하는 것도 좋구요. 이건 금연껌인데 할인 쿠폰도 들어 있어요. 이런. 유효기간이 지났네요. 패치와 껌중 어느게 낫냐구요? 잠시만요. 물어보고 올께요. 패치에는 니코틴이 조금 들어있어서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피우고 싶은 욕구를 없애준다는군요. 껌은 어떤 성분으로 인해서 점점 담배가 싫어지게 한답니다. 이 방법을 써 보고도 담배를 끊을 수 없다면 약물 보조제가 있어요. 여기서 처방전을 발행해 줍니다.

 

대모님댁에 갔더라면 소주를 잔뜩 마셨을까. 술기운의 힘을 빌어서 또 한국이 그립다는 말을 하고, 총격사건까지 나는데 빨리 나가 살아야겠다는 말을 했을까. 그 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나쁘지만, 성격도 내성적인 애가 여기까지 와서 오죽 힘들었으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나같이 성격 외향적인 애도 여기서 내성적으로 바뀌는 판에, 걔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데 이질적인 곳에서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지금 상태로는, 장담을 못하겠어요. 이런 식으로 외부와 단절 된 채 살다가 내가 조승희처럼 되지 않으리라고는 말 못하죠.

한국애들이 다 싸이코인것이 아니라, 특유의 문화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농사짓고 정착하는 사람들의 문화.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곳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낯설고 새로운 곳에 가면 그곳의 규칙을 존중하는. 유목민인 서양 애들처럼 일단 혼자 잘난척하고 밝은척 해야 아아 쟤 괜찮은 애구나.. 하는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일단 조용하게 있어야 하고 아는게 있어도 함부로 떠들지 않고 존경심을 보이고.. 낯선 사람이 조직에 들어오면 그 조직에 동화시키려고 많이 챙겨주죠. 그게 한국인 특유의 끈끈한 정이랄 수도 있고.

니네 규범을 인정한다..라는 뜻으로 입 다물고 있다가 바보취급을 당하는 곳이 미국이죠. 꼭 서부 개척시대니 프론티어 정신이니 하는거 안 내세워도, 적 아니면 친구라고 생각하고 내 식구 내 가족만 잘 살면 남이야 그러든 말든 상관 안하는 문화에서 우리나라 특유의 '한데 어울리는 문화' '끼리끼리 엉켜서 같이 노는 문화'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으니까. 물론 장단점이 있지만 말이죠. 한국에 가면 사람들이 나의 개인적인 것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것 같고, 미국은 너무 사람들끼리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어쩌면 이게 스무살 넘어 이민온 1세대의 부조리인지도 몰라요.

대모님은 이해하실꺼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니가 십년 살더니 아주 미국애가 다 됐구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지만. 대모님도 열 다섯쯤에 이곳에 온 1.5세니까. 놀러와서 냉장고까지 열어보는 한국 아줌마들에게 질렸다면서도, 미국애들은 지만 좋으면 끝이야..하는.

어젯밤은 추웠다. 분명히 전기장판을 켜고 잤는데도 고장이 났는지 중간에 꺼졌나 보다. 으스스 춥다. 옆 방에 가서 담요를 한장 더 가져다 덮을까 하다가 전기장판을 점검한다. 코드도 잘 꼽혀있고-가끔은 야옹이나 나의 잠꼬대로 뽑혀버리기도 한다-숫자도 5에 가 있다. 뭐가 문제일까. 모뎀에게 하듯 코드를 뺐다가 꽃고 숫자를 올려본다. 불이 들어온다. 이제 좀 잘 수 있겠군.

이상한 꿈을 꿨다. 졸업해야지... 흰 떡이 보이는. 기억한다고 했으나 잠에서 깨어 티브이를 켜자마자 다 날아가버린 꿈.

화면속의 남자는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더니 아버지를 찾았다며 엉엉 울고 있었다. 왜 울지? 아버지 따윈 찾아봤자 좋은 것도 아닌데...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아니, 이론상으로는 이해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았으므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200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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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인형에 얽힌 아픈 추억이 생각났다. , 뜬금없다. 아주 오래전이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욕구에 충실하겠다고 심리적인 표면에 떠오르는 걸 무심하게 바라보겠다고 한 이후로 가끔 이런다. 정확히 말하면 잊었던 게 아니라 내가 잊기를 바라면서 누르고 있었던 거겠지. 깊은 곳에서부터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네살, 혹은 다섯살의 나. 시내에서 엄마와 외할머니를 만나 백화점에 간다. 나는 들떠있다. 할머니나 남동생도 없고 이런 곳에 가는 것도 처음이다. 한손으로는 엄마를, 한손으로는 외할머니를 잡고 백화점 안을 돌아다닌다. 이윽고 두 사람은, 인형 매장에서 갈색의 커다란 곰인형을 산다. 나는 신이 나서 그 곰인형을 안고 다닌다. 갈색의, 입 부분은 살색이고 두 눈이 또록또록한 인형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두 사람은 그 인형을 남동생에게 준다. 그 인형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한번도 내 인형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인형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동물 인형이나 집짓기 블럭 같은 걸 좋아하던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당시 유행하던 마루인형을 선물한 적은 있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마루인형은, 금발머리에 파란 눈에 여성성이 극대화된(?) 모습이기도 했다. 이상하게 보이는 발육된 가슴과 엉덩이. 완벽하게 성인의 모습을 한 몸매. 지나치게 흰 피부.

당시로는 꽤 비쌌을, 집과 인형용 신발, , 거울까지 다 들어있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실망했었다. 나는 마루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인형은 곧, 멋부리고 꾸미기 좋아하는, 마루인형을 꾸며주며 노는 것을 좋아할 사촌동생에게로 갔다. 내가 여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은, 혹시 그런 선물을 하면 내가 여성스러워지지 않을까( 인형을 가지고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모양을 바꾸며 놀고 나아가서 나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바보같은 선택이었다.

여자애들은 어렸을 때도 '엄마'로써의 역할놀이를 강요받는다. 그래서 어린 나에게도 한 팔에 젖병이 들려 있어서 입에 끼울 수 있는 어린 아기 인형이 있었지만(눈이 파랗고 피부가 너무 하얘서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곧 싫증을 느꼈다. 소꿉장난, 지나치게 여성성만을 강조한 팔등신 서구 미인형의 사람인형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동물인형이고 집짓기 블럭이었다. 큰언니가 들고 춤을 추는 듯이 흔들면서 노래를 불러주던 갈색의 원숭이 인형. 귀퉁이의 페인트가 벗겨져 나간 삼각형, 사각형, 원기둥 모양의 블럭. 그리고, 마당에서 어슬렁 거리던 누렁이라는 이름의 큰 개.

조금 더 커서는 코코블럭을 갖고 노는 것이 좋았다. 아직 레고가 나오기 전, 그 블럭으로 차를 만들고 집을 만들고 망원경을 만들며 놀았다. 총도 좋아했다. 국민학교 1학년때는 앵글, 스패너 같은 단어를 외우느라 고생하면서 과학상자를 조립했다. 너트와 볼트, 나사.. 그때부터 익숙했던 것이다. 공구의 이름과 공구의 사용법에. 나는 1호쯤 되는 커다란 세트가 갖고 싶었다. 비행기도 만들고, 달 착륙선도 만들 수 있는. 나에게 주어진 건 책 안에 열 몇가지의 만들 수 있는 것들의 예가 나와있는 5호였지만. 그 안에 있는 물체의 순서를 따라서 만들기도, 모양이 비슷한 것 여러 가지를 모아서 로보트 모양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누군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같이 놀자고 하며 과학상자를 꺼내니까, 얼굴을 찌푸렸던 것이 떠오른다. 그건 남자들이나 하는 거야.. 이런 말을 했었던 듯. 하지만 우리집에 마론 인형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놀이에 있어서, 여성적인 것, 여성성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남동생과 다르게 하는 것. 나를 차별받게 하는 그것.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나는 동생과 평등한 취급을 받기 위해서 무지 애를 썼다. 그래서 여성적인 것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꾸 떠올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국민학교때는 프라모델 조립에, 조금 더 커서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아카데미사에서 나온 라디오 조립 세트나 과학상자의 전자 버전인 전자상자(?)를 조립하는 것을 즐겼다.

초인종, 기우 경보기. 트랜지스터, 저항. 한 손에는 납을, 한손에는 인두를 들고 납땜에 이상적인 4초 안에 땜을 마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곤 했었다. 기판을 달군다, 1. 납을 댄다,1. 납을 뗀다,1. 인두를 뗀다 1. 납을 지나치게 쓰지 않고 딱, 알맞게 퍼진 원형의 회로판을 보는 게 좋았다. 내가 만든 것에서 소리가 나고 불이 들어오는 것도.

 

지금도 손으로 하는 걸 좋아한다. 뜨게질이나 바느질 보다는(수놓는 것이나) 망치나 톱, 칼을 들고 하는 공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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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My friend

습작 2018. 5. 15. 20:11


나이가 서른 하나라고 했다. 무슨 띠냐고 물어봤더니 호랑이 띠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 나이로는 서른 셋.

나이가 있어 보여서 결혼했냐, 아이들은 있냐고(나도 이런 질문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조금,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접근법이랄까) 물어봤을 때 파 의 대답은 이러했다.

No Papa, no mama. no friend. if I die, I die alone.

. 지금은 없어진 태국 근처의 '' 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언제 태국에 왔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때 부모가 자신을 팔았다. 딸이라서. 3000밧에 일본 식당으로. 한시에 문을 열고, 새벽 세시까지 문을 열었다. 하루종일 하는 설겆이 때문에 손가락 사이가 찢어지곤 했다. 가게문을 연 시간 내내 일을 했지만 돈이라는 건 구경도 못했다. 먹는 양도 충분치 않아서 그녀는 지금도 아주 작다. 내 어깨 금근처에 닿을 정도일 뿐.

그 일본 식당에는 또래 아이가 세 명 있었다. 주인의 아이 셋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파를 때렸다. 파는 학교에 가고 싶어 했지만 주인은 일만 시켰다. 오년동안 그 가게에 있다가 나왔다. 그리고는 바에서 일을 했다.

No money, no school. what to do? some man, nice, some man no good. man everytime lie...

man.. make love. lie and go.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가게를 차리려고 했으나, 친구가 그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다. 지금도 그 친구의 생사를 모른다고 한다.

좋은 직장에 소개받아 가려했으나, 그 직장에서는 졸업증명서를 요구했다. 그녀는 학교에 간 적이 없다.

 

학교에 가고 싶어?

Now, no time, no have.

 

한번은 자신의 삶이 너무 불운하다고 생각해서 자살하려 바다에 나갔었다. 깊은 곳으로 걸어갔는데 어떤 외국 남자가 다가와서 어디가냐고 물었다.

Go away!

'팔랑'은 제트스키에서 뛰어내려 그녀를 건지고는 얼굴을 마구 때렸다. 정신차리라고.

그 남자가 준 만불로 다시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건너편 마사지 가게에서 파가 일하는 걸 보고 그 가게에 와서 일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파는 마사지사가 되었다.

 

You lucky. you have papa, mama, go school.

 

하지만, . 가족이 있다고 다 행복한 건 아냐.

 

친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이런 저런 얘기, 속에 있는 얘기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속이지 않는 친구.


You give heart, I give heart. I believe you. two day, you go. you no lie me. you far, far. come back next year. see me. don't forget me. OK?

 

마사지 마치고 나오는데, 마음이 짠했다.

여긴 어덜트 스쿨이 없는 건가. 영어 학교라도 가면 좀 더 나은 삶-그녀 표현에 의하면-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도울 수 없는 방법은 없을까.

My life, no lucky.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얼마전에 다른 언니네 방에서 본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사는 건 명령이래. 목숨이 다할 때 까지는 살아가야 한다는. 이 말의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나의 영어도, 태국어도 충분치 못했다.

 

. 그렇게 생각하지마. 죽으려 하지 마. 모든 사람은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대.

다음에 돌아올 때, 네가 가게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밥 먹으러 갈께.

 

언제쯤 올 수 있을까. 내가 태국에 온 것은 삼년만인데.

 

돌아가면 다 잊고, 열심히 일 해서 내년에도 올께.

 

작은 몸집의 파.

있다가 망고 가져가. 너 줄려고 내가 아까 시장 가서 사왔어.

 

마사지 값을 치르고, 팁을 주고 나오려는데 망고를 한봉지 준다.

이거 가져가. 친구랑 같이 먹어.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이런 게 사람 사이를 흐르는 정이랄까.

가져와서 게스트 하우스 식구들이랑 나눠먹었다.


망고 맛있네요. 어떻게 골랐어요?


제가 고른게 아니라, 친구가 사줬어요.


누구?


마사지 가게에 있는 '' 있잖아요.


.

 

내일 모레면 난 이곳을 떠난다.

내일, 사진이라도 함께 찍어야겠다.

. 내 친구 파와 함께.


  생명은, 누군가가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살아라''명령' 이라고. 생명을 받아 가진 자는 그것이 아무리 비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스스로 신의 부름을 받아 소진될 때까지는 살아야 할 명령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김정란


                                                200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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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극

습작 2018. 5. 12. 20:00



정모에 갔다가 학교 선배를 만났다.

우습게도, 정모에 나온 네 사람 중 둘씩 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나머지 둘이 같은 동네에 산다고 해서 학교를 거슬러 올라갈 때 난 그저 옆에서 웃고만 있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어요? 라고 물었던 내 앞자리 있던 사람이 내 선배라니. 알고보니 사는 동네도 비슷했다. 아니, 살았던 동네.

온라인에서의 만남은 가볍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이 어린 사람들이 많이 나오니까 그렇겠지. 같이 만나서 놀고. 마음이 맞으면 사귀고. .

장소를 옮겨 근처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 지네요, 라는 나의 말 때문에. 곱창집은 문 닫았을 것 같고, 감자탕이나 삼겹살이 좋겠어.

. 삼겹살집 가죠 뭐. 국물이 먹고 싶기는 했지만 감자탕의 뻘겋고 매운 국물은 싫었다. 동네의 전형적인 그런 고깃집.

안녕하세요. 아아 형부. 저 왔어요.

소주 한병 달라는 옆 테이블의 말에 갑자기 선배가 벌떡 일어나더니 냉장고에서 소주를 갖다가 준다. 내가 아무래도 사람 많이 대하는 직업이라, 친해지면 언니, 형부 그러거든. 아무래도 빨리 친해지지.

창고가 생각났다. 창고에서의 나도, 아니 장소가 너무 좁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옆 테이블에 맥주를 갖다줘야 했을 때 벌떡 일어나 받아서 넘겨 주지 않았던가.

곱게곱게 크다가 인하대 수학과를 나와서 어쩌다가 식당을 한다는 주인 언니와 얘기를 몇 마디 나누다가 한잔 하자는 말에 언니가 그런다. 난 소주 안 마셔.

돼지수퍼에 가서 가시오가피를 사왔다. 이거 아닌데. 이거 가짜야. 950원짜리.

에이. 그래도 마셔요. 이것도 가시오가피는 가시오가피네.

술을 마시다가, 잠깐 졸았다. 가게 뒷방에 가서 눈을 붙이고 나왔다. 방 한켠에는 분홍색 내복을 입은 꼬마가 곤히 자고 있었다. 오래 전, 인천 고모네 식당에 가면 그랬었지. 온돌방의 식탁을 한 켠으로 붙이고 나란히 나란히. 사촌오빠와 사촌 동생과 나.

이제 좀 깼냐고 누군가가 나를 부르러 왔다. 밖에 나가서 술을 더 마셨다. 선배는 많이 취한 모양이다.

그 나쁜새끼..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중학교 2학년때부터 집에서 돈 한푼 안 받고 모은 돈이야. 알아? 그래서 산 집이야. 한푼 도움 안 받고 내 힘으로.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엉엉.. 나쁜 새끼. 더러운 새끼.. 으흑흑.

옆에 있는 내가 다 눈물이 났다.

그 새끼.. 사실은 새끼가 아니라 선배의 옛 애인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취직해서 월급타도 생활비에 보태는 게 아니라 비싼 옷부터 사고, 용돈은 선배에게 타서 쓰던.

선배는 용케도 이름이나 '그년' 같은, 성별을 알 수 있게 하는 호칭을 피해가고 있었다. 술집 바닥에 주저 앉아서 엉엉 통곡을 하는 그 상황에서도. 아직, 이성은 살아있었다. 이름을 말하는 순간 혹은 성별을 알 수 있게 말하는 순간 선배가 가족같이 생각하는 이 공간 안에서의 인간관계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쟤가 오죽하면 나한테 와서 그러겠냐. 얼마나 속상하면 그러겠냐고. 그래도 나는 다 이해한다. 그래도 나는 쟤가 이뻐. 혼자서 살라고 애쓰는 게 얼마나 이쁘냐.

 

형부라 불리는 사내. 눈썹이 짙고 눈이 크다. 쌍거풀도 짙다. 무슨 얘기를 했던가.. 폭력사태. 옆에 있다가 그냥 휘말리기도 쉽고, 재수 없어서 맞고 있다가 휙 밀었는데 뒤로 넘어져 죽어버리기도 한다는. 나도 그런 케이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3범이여. 재수없게시리. 어때요. 돈 없어서 합의 못 해준건데.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우리는 재혼이야. 같이 산 지 칠년쯤 됐지. 신고는 안 했지만.

저거, 내 딸내미, 피는 안 섞였지만 나를 닮았어. 눈이 크다래가지고 쌍가풀 지고 반짝반짝 해. 나한테 와가지고 아빠 아빠 하면, 아주 고거 이뻐 죽겠다니깐.

잠깐,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스쳤다. 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웃음.

명절에? 아니. 아무데도 안 가. 여기 있을 거 같은데.

그래. 와서 같이 놀자. 명절이 별거냐. 가족이 별거냐. 너도 갈 데 없으면 와서 같이 지내자.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한잔 하고.

나중에라도, . 오천원짜리 찌개라도 하나 해 주지 뭐. 자주 놀러와.

 

한눈에 보기에도 별 기술도 없어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들어오더니 저쪽 테이블에 스윽 앉았다.

요즘 뭐하냐.

죽겠어요. 휴우.

그러게 바람은 왜 펴?

, 너 나가. 너만 보면 니 와이프 생각이 나서 억장이 무너진다. 딴데 가서 마셔!

느물느물한 사내는 그러나 결코 자리를 뜨지 않았다. 형부라 불리는 눈이 커다란 사내가 눈을 더 크게 뜨고 남색 잠바를 입은 사내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바람을 폈는데.. 아후. 그럴 수도 있지.. 여자가 뭐 그러냐...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재수없게 여자가 ..

어느 순간, 선배 눈에서 불꽃이 번쩍, 한다.

야이 십새끼야. 바람피운게 자랑이냐. 미친새끼. 여자가 뭐 물건이냐..

나와 언니가 말리는 사이에도 순식간에 선배는 그 자식의 뺨을 때렸다. 술을 마셔서 정신없는 상태라서 그렇지, 체대 출신인 선배가 제정신으로 화가 나서 쳤으면 한방에 나가떨어졌을텐데. 그냥 가볍게 툭, 소리가 났을 뿐인데 남색 잠바는 과도하게 화를 낸다. 남자가 뭐 저래.

얼굴이 벌개져서 온갖 욕을 다 한다. 무슨 년 무슨 년.. 시리즈로 엮는다. 형부와 내가 양쪽을 수습해서 의자에 앉힌다.

죄송합니다. 좀 취해서요. 안좋은 일도 있고 해서요. 죄송합니다.

남색 잠바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나보다. 자꾸 일어나려고 하길래 가서, 안경을 벗었다.

차라리, 저를 치세요.

고개를 꾸벅, 하더니 수그러 든다.

안경을 쓰고 제자리로 온다.

그러게 당신이 왜 쟤 편만 들어줘?! , 언니가 형부한테 소리를 버럭 지른다. 내가 뭐 편을 들어줬다고 그래, 당신은? 변명을 해 보지만, 맞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과도하게 편들어 줬다. 같은 남자라 이건가.

당신 **가서 며칠 없을 때 야가 와서 주방 봐줬어. 고마운 사람 챙기는 건데 왜 그랴?!

. 나가자. 여기 있어봤자 싸움밖에 안 하겠다. 언니가 한잔 살께.

집 뒤의 여관골목을 돌아가니 아직도 불이 환한 해장국집이 있었다. 콩나물국밥 두 개와 소주를 하나 시켰다. 닭발7000, 꼼장어 8000.

국밥은 미원 냄새가 많이 났다. 먹으면서도, 내일 속 뒤집어 지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에는 머리가 긴 여자와 반곱슬의,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앉아서 술을 마신다. 여자는 발음이 불분명하다. 아마, 많이 취했거나 아니면 중국교포일 것이다. 억양이 좀 어색하다.

그 자식 진짜. 오지 말라니까 꼭 와가지고 그렇게 나가지도 않고 있는다니까. 재수없는 새끼. 와이프가 지난번에 와서 얼마나 난리치고 갔는지 알아? 그새끼만 보면 와이프 생각이 나서 난 진짜 안 받고 싶은데 자꾸 옆에서 감싸주니까 열받네. 아휴.

앞자리에 나와 마주앉게 앉은 남자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를 건다.

. 형님. 저에요. 무슨 일 있었어요? 가게에서 싸웠다고 하는 거 같아서. ... 알았어요. 나중에 한번 갈께요.

좁은 바닥인지, 저 남자도 형부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 바람에 뒤를 돌아봤던 여자가 이쪽을 건너다 보며 아는 척을 한다.

언니. 안녕하세요. 저 아시죠?

.. 왠일이세요. 왠일은요. 술마시러 왔죠.

나이를 얘기하는데 그 여자, 자기는 서른 셋이라고 한다. ? 그럼 74?

에이, 언니 마흔 넘었구만. 왜 거짓말 해.

선배가 윽박지르자, 그 여자, 다시 뒤로 돌아앉는다.

저기요, 언니. 죄송해요. 이 언니가 많이 취해서요.

내가 변명을 하는데 옆에 앉은 식당 언니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

국밥을 꾸역꾸역 다 먹는다.

몇술 뜨다가 숟가락을 놓은 선배에게 언니는 다 먹으라고 한다. . 이 언니가 사는데 안 먹냐? 콩나물이라도 다 건져 먹어. 끼니 밥은 걸러도 술밥은 걸르면 안되는거야. 밥 더 말까? 아이 이뻐라. 나는 니가 이쁘다. 나한테 와서 꼬장 부려도 나는 니가 참 이쁘다. 그래. 옳지. 한 술 더 말까? , 이거 다 먹어야 해.

식당 언니는 국밥을 선배쪽으로 밀어 주었다. 뭐가 묻었는지, 냅킨을 뽑아 내 입을 닦아준다. 가슴이 서늘해 진다. 나도 이런 언니 하나 있었으면.

니도 좀 꾸며. 어떻게 서른 하나짜리가 서른 여섯짜리보다 더 삭았냐.

선배가 워낙 동안이니까 그렇죠!

아냐. 얼굴 말고!

살은 살이라 치고, 좀 꾸며! 사람 취향이 얼마나 다양한지 아냐?!

알았어요... 공부 끝나면..

공부끝나면이 아니라, 지금부터 조금 꾸며봐. 꾸미면 이쁘잖아. 니도 못난 얼굴은 아니다. 지금 이 상태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꾸며봐라 이거야. 알았지?

.

나가서 오가피를 한 병 더 사왔다. 돼지수퍼는 아직도 문을 닫지 않고 있다.

이게 진짜야. 알았지? 세로로 가시오가피, 이렇게 빨간 글씨로 써 있는거.

뚜껑에 임꺽정 그림 있는 거요?

그렇지.

다시 술 몇잔이 오갔다. 선배는 아무래도 많이 취한 모양이다.

저 쪽으로 가면 나와. 수고 좀 해라. 멀리 안나간다.

.

걸음은 비틀대면서도, 발음은 멀쩡하다.

저 개새끼. 말끝마다 여자가 여자가. 무슨 여자한테 원한이 맺혔나. 지가 바람폈으면 바람폈지, 왜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고 지랄이야 지랄이!

맞아요. 아까 한대 치는데, 겉으로는 말리긴 했지만 솔직히 속이 다 시원하더라구요.

. 미안하다 초면에.. 내가 좀 많이 취했다. 자꾸 생각이 나서 그런다.

괜찮습니다.

담배좀 한 갑 사라.

.

편의점앞 의자에 선배를 앉혀놓고 담배 한갑을 샀다. 구석에 앉아있던 점원이 벌떡 일어난다. 2500원입니다.

한쪽 팔을 부축하고, 걷는다. 이 시간에 걷는 건 오랜만이다. 여섯시나 되었을라나. 아직 사위는 어두운데 성질 급한 사람들 집에는 벌써 불빛이 흘러나오고 티브이 소리가 들린다.

강아지 좋아하냐?

.

집에 도착하니 주먹만한 개가 펄쩍펄쩍 뛰며 반긴다. 삼개월짜리. 정말 작은 개. 바닥에 앉으니 허벅지 위로 냉큼 뛰어올라 꼬리를 마구 흔든다.

. 선배가 개를 후려갈겼다. 가만히 좀 있어, 로또!

왜 애를 때리고 그래요.. 쪼끄만 애를.

아냐. 버릇을 들여야지.

 

화장실을 다녀오니 선배는 맥주를 따서 앞에 놓고, 전화기를 놓고 그렇게 앉아있다.

전화 하면 안되는 거겠지? 그러면 안되겠지?

그럼요. 전화하지 마세요. 받기나 하겠어요, 이 시간에?

그냥 잊으세요. 확 끊어버리세요. 사랑이라는게 그래요. 같이 있을때는 끝까지 갈 것 같지만, 일단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에요. .

그래? 넌 그게 잘 되냐? 난 잘 안되더라.

예전에 온라인에서 바람기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20퍼센트 나왔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면, 애인이 있을때는 정말 잘 하는데 헤어지면 더 이상 미련 두지 않는다 이거죠. 사랑했지만, 헤어졌으니까 이젠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다. 뭐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좀 차가운 성격이죠.

이야. 좋겠다. 진짜 부럽다. 나는 그게 잘 안돼. 진짜 전화하면 안될까? 내가 전화하면 안되는거겠지?

. 자꾸 마음만 약해져요. 전화하지 마세요. 잊어버리세요.

 

작은 방에서 빨래 건조대를 꺼냈다.

그래. 여기서 자라. 이불이랑 위에 있으니까 편하게 자라.

선배는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인터넷을 조금 하다가 작은 방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눈이 부셔서 잠이 깼다. 아래 깔려있는 옥돌장판의 스위치를 올려놓고 자서인지 온 몸이 땀에 젖어있다. 개운하다. 선배는 내가 노크를 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을 여니 강아지가 펄쩍펄쩍 뛰며 반긴다.

우유를 한잔 마시고 다시 잠을 청한다. 한 두 시간 후면 선배도 일어나겠지.

다시 일어나니 두 시. 아직도 기척이 없다. 일어나서 뭔가를 읽으면서 기다리려 해도 도무지 책이나 신문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쓰린 속에 뭔가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아서 부엌을 뒤진다. 컵라면을 꺼냈다. 컵에 물을 담아 전자렌지에 돌린 다음에 스프를 넣고 물을 붓는다. 물이 덜 뜨겁다. 일분 더 해야 하나? 컵에 반쯤 물을 넣고 이분을 돌린다. 조금 뜨거워 진 것 같다.

아무래도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살금살금, 일어나서 옷을 입는다.

문을 여니 알람이 울린다. 이런. 한편으로는 알람 소리에 선배가 벌떡 일어나주길 바랬으나 강아지만 달려온다. 뚜껑을 열고 건전지 하나를 뺀다. 조심조심 바닥에 내려 놓는다. 현관문을 닫으며 강아지가 달려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강아지는 건전지를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다.

잠바 오른쪽 팔이 이상하다. 두꺼워진거 같다. 손을 넣어보니 목도리가 잡힌다. 식탁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걸어 두었다가 집어들었더니 먼저 있던 목도리가 딸려 나왔나 보다. 이런.

화창한 날이다. 햇볕을 좋은데 바람이 무척 많이 분다.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둔 소주병 때문에 자꾸 오른쪽으로 처진다.

바람 때문에 가게 앞에 깃발로 장식해 놓은 것들이 빠른 속도로 펄럭거린다.

사람들은 옷깃을 단단히 여며 잡고 걸어간다.

집에는 누가 있을까.

차 한잔 생각이 간절하여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201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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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

인천

습작 2018. 5. 12. 19:40


늦은 오후.

박물관에 가기는 늦은 시간이었다.

해 지는 걸 보고 싶어서 인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중고등학교때 답답하다 싶으면 바다에 갔던 것 처럼 서른이 된 지금도 나는 바닷바람을 쐬러 간다.

배가 고파져서 동인천역에서 내려 지하상가를 거쳐 신포시장에 갔다. 거의 한 정거장쯤 되는 긴 지하상가. 화려하다. 가지가지의 상품들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상인들로 활기가 넘친다.

자주 가곤 하던 할머니집에 찾아갔다. 스티로폼 통에 키우던 화초가 안으로 들여놓아져 있고, 문에는 전기요금 1600원 이라는 고지서가 꽃혀 있었다. 할머니네는 문을 닫은 걸까. 아니면 일찍 닫고 어딜 가신 걸까. 언젠가부터 할머니 대신 할머니의 딸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괜히 걱정이 되었다. 건강이 안 좋으신가. 이 칼국수를 먹고 싶어 태평양을 건너왔는데.

옆에 돼지네가 열었길래 들어갔다. 아줌마는 혼자 무료하게 티브이 오락프로를 보고 있다가 반갑게 맞았다. 티브이에서는 연예인들끼리 놀고 있었다. 저게 왜 오락 프로일까. 자기네들이 노는 거지, 우리가 노는 게 아닌데. 열심히 요가 동작을 따라하면서 자기들끼리 낄낄 웃고 있었다. 아니, 아주머니도 웃었으니 오락 프로가 맞는 걸까.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이 땅을 떠나 있었던 걸까. 오락프로라 불리는 것들을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칼국수를 시켰다. 칼국수에 튀김가루가 안 나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무도 하나 추가. 양이 좀 많긴 하지만 오랜만에 우무도 먹고 싶었다.

단무지와 깍두기, 우무가 먼저 나왔다. 우묵. 혹은 우무. 잘게 썬 우무와 채썬 양배추 위에 초고추장이 올려져 있다. 매웠다. 그래도 옛날 맛이 난다. 이 집 우무는 다른 집에 비해 찰지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을 만큼.

튀김가루 넣어 드릴까요? . 많이 넣어 주세요. 다행히 튀김가루가 있었다.

칼국수가 나왔다. 아무래도 양이 좀 많은 것 같다. 아주머니가 내 덩치를 보고 많이 주신건가. 계란 하나를 풀고 튀김가루와 김 쪼가리를 올린 칼국수는 변함이 없다. 우무와 칼국수를 번갈아 가며 먹었다. 혼자 오는게 처음이던가, 아니던가.

아마도 고등학교 이후 나와 함께 인천 구경을 온 사람이라면 이 집에 아니 이 골목에 한번씩은 다 와봤으리라. 난 밀가루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할머니집 칼국수만은 예외다. 이 집도 맛이 괜찮다. 면발이 좀 가느다란 것만 다르다.

면발을 남겨야겠군, 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닥이 보이도록 국물까지 다 먹어버렸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이십대 청년 둘이 나타난다. . 어서들 와.

이모, 우리 제육 하나 칼국수 하나. 어제는 왜 그렇게 일찍 닫았어? 우리 이제 낮에 와. 사장님이 시간 바꿔 버렸어. 일찍 닫지 마 이모.

열심히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짙은 색 옷을 입은 목소리 굵은 아저씨가 나타나서 온풍기 옆에 앉아 티브이를 열심히 본다. 조금 후 분홍색 스웨터에 야구모자를 쓴 아가씨가 나타났다. 엄마. 나랑 같이 가야 돼. 엄마가 싸게 하는데 안댔잖아. 금은방, 나 이 목걸이 반지로 할래.

내가 칼국수와 우무를 먹는 동안에도 티브이에서는 연예인들이 나와 이상한 체조를 하거나 누워서 복근 운동을 하며 낄낄거렸다. 놀고 돈벌고. 참 좋은 직업이군.

계산을 하고 골목으로 나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큰 길로 나가려는데 내가 가려하는 쪽에 이쪽으로 등을 보이고 삼색 얼룩 고양이 한마리가 엎드려 있다. 바닥이 찰 텐데. 가로등 온기라도 쬐고 싶은 건가.

결국 내가 빙 돌아서 가는 편을 택했다. 잠시 휴식을 즐기고 있는 거라면 그것을 방해할 권리는 내게 없다.

신포동 앞에서 버스를 탔다. 306번을 타면 을왕리 해수욕장까지 간다. 참 많이도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연안부두에 나가 관광 5호나 8호를 타고 두 시간쯤 가서 용유에 내려 버스를 타고 삼십분쯤 들어가야 도착하는 곳이었는데.

인천역을 지나고 월미도에 내렸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은 한 켠의 놀이동산에 몰려 있다. 작은 바이킹과 디스코만 작동중이다.

디스코 앞에는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 발을 동동 구르면서 구경하고 있다. 여전히 입담 좋은 디제이는 손님들 중 어리고 이쁜 여자들을 골라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치마 입은 애들만 골라서 튕긴다. 열 일곱. 열 여덟. 녹색 셔츠를 입은 고교생은 슈렉으로 불린다. . 슈렉 옆에 까만 잠바. 너 몇살이야? ? 열 여덟? ,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밥 좀 굶어야겠다. 거기 머리 큰 세 사람. 완전히 소방차네. 가운데 까만잠바가 정원관. 내 소원이 뭔지 알지? 나보다 머리 큰 여자 만나는 거.

저 새끼가! 누군데 밥을 굶어라 마라야. 확 신경이 쓰였는데, 머리를 파마하고 치마를 입은 한껏 멋을 부린 고등학생들은 낄낄대며 서로를 때린다. 재미있는 건가. 저런 식의 말투? 남자한테 야. 너 살쪘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밥좀 끊어야겠다. 하면 재미있을라나. 저 디제이. 입이 걸다. 아니, 입이 건 걸 넘어서 좀 이상하다. 가운데에 서서 안전요원 구실과 재주넘기를 하는 스무살짜리 애를 가지고 논다. 나이는 열 살 차이지만, 그게 다는 아닐텐데.

디스코 바라보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다. 버스타고 월미도에 내렸을 때도 컴컴해지는 중이었지만. 터덜터덜 걸어서 바닷가로 간다. 용주호가 들어오고 있다. 옆에 코스모스 유람선도 지나간다. 배를 탈까. 영종도로 건너가 어시장 둘러보고 버스로 을왕리까지 갔다 올까.

혼자서 다저녁에 거기까지 가서는 또 뭘 하랴. 바닷가를 휘적휘적 걷다가 다시 버스타고 돌아올텐데. 혼자 횟집가서 조개구이에 한잔 할 수도 없고. 다니던 학교에나 한번 올라가 볼까. 이제 거기도 학교가 아니라 민박집이라 들어가 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한동안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애들, 동네 동생들 이젠 알아볼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애기 엄마가 장래 희망이라고 말하며 씨익 웃곤 했던 **민박 언니는 지금 희망을 이뤘을까. 내가 무척 아꼈던 희선이. 얼핏 소피마르소를 닮은 외모에 순한 성격의 지연이. 유영이는 중학교 때인가 중학교 졸업 때인가 결혼을 해서 인천에서 단란주점을 한다고 들었다. 짬망태라 불리던 민경이는 잔뜩 배 불러서 왕산리로 내려와 있다고. 내 라이벌이었던 정아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었다. 명애는 교대에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3을 지나면서 다들 연락이 끊겼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19년 전의 모습들이다. 중학생이 되어서 찾아갔을 때 만났던 애들도 있지만 못 만난 애들도 있고,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애들도 있을테니. 이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듯. 그만큼 시간이 지났고 또 우리의 모습도 변했을테니까.

그러므로, 밝은 대낮에 한번 다시 가기로 한다. 예전처럼, 주머니 칼 들고 가서 굴이라도 따 보던지. 돌 들춰 작은 게를 잡아 같이 간 일행을 놀래켜 주던지.

조개구이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해 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던데. 사람들은 해 지는 걸 보기 위해서 우리가 전대통령 아들의 건물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그 건물에 들어선 카페에 가기도 한다고 들었다. 87년 당시 그 건물은 비어 있었고, 하얀 대리석 외벽에 형광분홍 지붕으로 된 성처럼 생긴 곳이었다.

이런 데서 살면 좋겠다. 그치?

보리수 열매를 따러 올라간 우리는 그 건물이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 처럼 생겼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곤 했다.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 처럼, 바닷가의 저쪽 끝까지 걷는다. 종이학 모양의 극장이 생겼다. 화장실이 깨끗해졌다. 수퍼가 보이길래 불쑥 들어갔다.

혹시, 소주 플라스틱 병에 든 거 있어요? 없어요. 다 이홉들이지 뭐.

물어봤던게 무안해져서 얼른 캔커피 한 개를 들고 나온다. 돌아나오는 길에 있는 다른 수퍼도 마찬가지다. 이홉들이만 판다.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플라스틱 병에 든 것은 없고 팩소주가 있다. 병이 더 낫긴 한데, 팩소주라도 집어든다. 병나발 불 수는 없으니까. 두 세 모금 마시면서 기분만 내고, 나머지는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천 백원입니다. 이 소세지는요? 오백원입니다. 아르바이트 하는 청년의 손이 거칠다. 도시 한켠의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섬유질의 식물성 몸매의 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손으로 하는 노동에 익숙해 졌을 그런 마디가 굵고 큰 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려고 했으나 귀찮아져서 그냥 벤치에 주저앉았다. 팩소주. 꼭 주스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 약해졌다. 21도라고 했던가. 이제는 사카린 냄새 때문에 캬! 하는 소리를 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저 약하고 달콤한 술이다.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는 건 가장 적은 돈으로 따듯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세지를 꺼내서 뜯고 안주 삼아 먹고 있는데 아까 흰둥이라고 불리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가던 개가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소세지는 양이 좀 적은 것 같아서 가방에서 야채빵을 꺼내 반을 뚝 떼어 잘라줬더니 냄새만 맡고 먹질 않는다. 휙 던졌는데도 가까이 가더니 코만 대보고 만다. 짜식. 빵이 싫으냐? 소세지를 한조각 잘라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이로 살짝 집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먹는다. 비린내 나는 게 좋다 이거지? 그러고는 또 한참 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저 애절한 눈빛이라니. 알았어 알았어. 한조각 더 잘라 주었다. 소세지를 다 먹고 나서 빵조각이 너무 커서 그런가 싶어 작게 잘라 주었는데 입만 대보고 만다. 그래. 나도 빵이 싫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내가 소세지를 더이상 주지 않자 원래 던졌던 반쪽짜리 빵을 앞발로 툭툭 쳐 보더니 가버렸다. 뭐야. 고양이도 아닌 것이. 마치, 이게 나 먹으라고 주는 거냐.. 하는 듯 보였다.

조금씩 소주를 마셨다. 날이 꽤 추운지 청바지 밑으로 맨살인 허벅지가 얼얼하다.

남은 빵을 먹었다. 또 소주를 마셨다. 바닷가에 있다고 문자 메세지를 보내고, 전화를 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신포시장에서 먹을 꺼리좀 사 올 껄 그랬나. 그러면 인천 역에 가서 바로 차 타면 되는 건데.

오른쪽 벤치에도 혼자 온 여자가 있었는데 가고 없다. 그 사람은 왜 혼자 온 걸까.

바로 옆쪽의 나이 든 바퀴벌레도 사라져 버렸다.

버스를 타고 신포시장에 갔다. 뒷편은 더 번화가인듯 싶었다. 신포시장은 아무리 봐도 정비를 잘 해놨다. 현대적인 간판에 러시아어까지 있는 표기. 닭집에 한국어로는 닭, 그 밑에 닭을 뜻하는 단어 대신 러시아어로 '맥주' 라고 적어 놓은 게 흠이지만. 말해줘야 하나? 언제 한번 그 집에 가서 술 마시면서 얘기해 줘야겠다.

산동반점에서 공갈빵을 샀다. 하나에 800원씩이나 한다. 전엔 천원에 세 개 였는데. 팥빵도 하나 사고, 닭강정집에 줄을 서서 닭강정 대자를 하나 샀다. 바로 한 거라 바로 먹으면 맛있을텐데. 가져가도 바로 먹을 사람은 없을 듯.

만두도 이천원어치 샀다. 김말이가 보이길래 하나 먹었는데 안 튀긴거라고 괜찮다고 하면서 돈을 안 받았다. 왼쪽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어 돈을 지불하니, 아줌마가 월급날인가 보네요. 하긴 월급 탈 날짜 됐지. 라고 한다.

나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 오늘이 간조라서, 라고 말하고는 셈을 치뤘다.

술 마신 김에 오뎅도 한꼬치 먹고, 그 집에서 호떡도 샀다. 사람들이 일찍 들어와야 할 텐데. 너무 많이 사는 것 같았지만, 내일 올 손님도 있고 해서 그냥.

원래대로라면 동인천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탔겠지만 오늘은 왠지 인천역에 가서 타고 싶었다. 인천역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차이나타운 입구를 알리는 패루는 밤에도 조명을 받아 휘황찬란하고, 안쪽 길에도 가로등을 설치하고 경사를 완만하게 돋웠는지 볼만했다.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 커피를 한잔 뽑아 마셨다. 멀리, 대한제분의 북극곰 상표가 보였다. 차에 타고 집으로 오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인천에서 창동은 거의 끝에서 끝이라 돌아가는 길엔 세번째 자리 쯤에 앉아서 유리창 경계에 머리를 기대고 자면서 가곤 했었다.

이제 그곳에 나의 집은 없다. 나는 터덜터덜 역곡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왔다.


                                                   200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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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

기억

습작 2018. 5. 12. 17:33


내가 처음 사랑한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그 전엔 내가 여자를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친구의 맑은 눈을 보거나, 흰 블라우스를 입은 뒷모습을 볼 때도 그냥 아,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사랑한다고 여긴 적은 없었거든요.

여태껏 아무도 챙겨주지 않던 생일이었는데, ㄱ이 음력으로 오늘이 227일 이더라, 하면서 작은 로션을 내밀었을때에도. 소풍 가던 날 나에게 살짝 기댈때에도.

한번도. 그 애들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열 다섯살이었고 학교가 끝나면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재잘대곤 했으니까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다정다감한 가부장과 친절한 언니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 애의 가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아아. 아부지는 술마시고 두들겨 패는 이외의 역할도 하는구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그저 드러나 보이는 결과만을 보고, 원인은 깡그리 무시해 버리죠.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한 겹 깊은 곳에 숨어있어요.

언젠가 ㄴ씨가 강간 당한 후 남장을 하고 찾아온 후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후배를 껴안고 울었다는. 긴 머리에 이쁘장한 얼굴. 참 여성스러운 사람이었는데 그 날은 짧은 머리에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메고 와서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동생을 붙잡고 울기까지 했으면서. 왜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걸까요.

혹시, 그 사람을 붙들고 하느님이 말한 것에 거슬려 사는게 불쌍해서, 지옥불에 떨어질까봐 운 걸까요...

 

나에게는 무덤 속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걸 말하는 건 당신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겠죠. 그냥, 부담없이 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이상한 이야기라면 그저 잡지책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시면 되잖아요.

어린 시절의 기억입니다.

우리는 다섯 식구였어요. 할머니, 아버지, 엄마, , 남동생. 아직도 이 서열이 입에 붙어있습니다. 엄마는 나보다 높은 사람이고, 엄마는 아버지보다 높은 사람이고, 할머니는 우리 집안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다. 높은 사람이 말한 것에 대해 낮은 사람은 절대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규칙은 남동생과 나 사이에서는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 따라야 하는 건 저였습니다. 저를 챙기는 건 아무도 없었지만, 남동생의 뒤에는 늘 할머니가 계셨거든요. 우리는 싸우다가 곧잘 할머니에게 갔습니다. 할머니가 누구보다 공정하게 이 사태를 해결해 주시리라, 믿으면서요. 왜냐면 할머니는 우리 집안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고 아버지보다도 높은 사람이니깐요.

하지만 할머니는 늘 동생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 일에서도요. 그렇지만 저는 그 판결에 복종하는 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집안의 어른이고 제일 높은 사람이니깐요. 혀를 낼름거리며 의기양양하게 뛰어가는 동생이 보기 싫었지만 높은 사람은 옳은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했으니깐요.

 

여섯살?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렸던 다섯 살?

저는 무거운 것이 제 몸을 누르는 느낌에 잠이 깼습니다.

가위가 눌린거냐구요? 아뇨. 처음 가위에 눌린 건 그보다 한참 지난 열 한 살때였어요.

눈을 뜨자 아버지가 날 누르고 있더군요.

낄낄 웃으면서.

난 숨이 막혀 왔습니다. 난 겨우 대여섯살난 깡마른 여자 아이였을 뿐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방 옆에 있었지만 텔레비전에서 하는 연속극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나 봐요. 아니, 힐끔힐끔 쳐다보는 걸로 봐서, 아부지가 날 깔고 엎드려 있다는 걸 알긴 알았나 봅니다.

조금 축축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숨막히는 무게, 숨소리와 담배에 쩔은 입냄새. 무거웠다는 거, 그래서 숨쉬기 힘들었다는 게 제일 많이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내 위에서 내려오자, 나는 내 옆에 있던 빗자루를 집어 던졌습니다.

숨 막혀 죽을 뻔 했잖아. !

그냥 웃고 가버리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무거움만 생각날 뿐.

우리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그것도 교육 공무원.

오랫동안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가끔씩 아버지의 제자들이 집에 놀러오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된 제자가 정종병을 들고 인사를 올 때도 있었습니다. 나도 그 사이 점점 나이가 들어 버려서 아버지의 제자들이 더 이상 언니가 아니고 동갑내기였다가, 이젠 내가 나이가 한참 많게 되어 버렸네요.

학교에서의 그는 꽤나 좋은 선생님인 모양이었습니다. 친구들, 동료들이 찾아와 껄껄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다 가곤 했습니다. 제자라며 오렌지 주스 한 통을 두고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존경요? 글쎼요.. 난 잘 모르겠습니다.

성당 뒷마당에서 나를 목마 태우고 다니거나, 춥다고 웃저고리를 벗어 덮어 주던 다정한 아버지의 기억도 있지만, 더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니까요.

 

중학교때의 어느 날인가, 학교에 다녀온 저는 들떠 있었습니다.

원래는 봄에 가기로 했었던 극기훈련을 떠나기 전날이었습니다. 짐을 싸느라 분주했어요. 세면도구와 반 친구들이 잠들었을 때 낙서할 펜, 같이 먹을 과자 몇 개.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는 내게 묻더군요. 지금 뭐 하는 거냐고.

, 내일 극기훈련을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더니 회비를 얼마를 냈냐고 물었습니다.

모르겠어요.

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매년 봄에 가던 극기훈련이 갑작스런 비로 가을로 연기 된 거였으니까요. 봄에 얼마를 냈었는지, 기억 해 내지 못했습니다. 이만 사천원이던가, 삼만 오천원이던가.

지금 같으면 아무렇게나 대답을 했겠지만 그 때의 저는 어렸습니다. 묻는 말에 정확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냈냐고 재차 물었지만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정확한 비용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원래 봄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가을로 연기 된 거라서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

갑자기 눈에서 불똥이 튀었습니다.

. 아버지가 저를 때린 거였죠.

왜 기억을 못해, ? 돈 내줬는데. 이런 썅!

막으려던 내 손을 억센 손으로 잡고서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저를 때렸습니다.

안경이 저만치 날아가고, 머리가 헝클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입 안이 찢어지고, 볼이 부어올랐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뭔가 둔탁한 것이 제 머리를 때렸고 노란 색을 보고서 그게 제 방의 의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정신을 놓지 않고 있었어요. 그 날 이후 제 오른쪽 옆, 그러니까 귀 바로 윗쪽 머리뼈는 움푹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머리가 둔한지도 몰라요.

그렇게 저를 때리다가 지쳤는지,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때까지 잠에서 깬 할머니와 엄마, 동생은 마루 한 켠에 앉아서 그냥 저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관객이 무대 아래서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듯이.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운이 나쁘게도 악역을 맡아야 했던 건지도.

매질이 멈추자 할머니는 저에게 욕을 하며 아버지에게 빌라고 말했습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라구요. 하지만 제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한테 무조건 빌라고 하는 말. 저는 나중에 아이들한테 하지 않을 겁니다. 잘잘못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힘있는 사람이 옳다고 하는거, 그게 진실입니까? 그건 단지 권력에 의해서 아닌 걸 맞다고 잠시 우기는 것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 남자들은 그런 힘에 아주 익숙해 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중학교 여름방학 ...

엄마도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잘못했다고 무조건 빌라고 똑같이 말을 했을 뿐이죠.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예전처럼, 너하고 나하고 나가서 죽자. 하며 날 때리지는 않았으니까요.

. 그래서 동생이랑 같이 있는걸 싫어합니다. 제법 머리가 컸다고 술을 사달라, 밥을 사달라 놀러가자 하지만 저는 걔가 저를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어릴 때부터 줄곧 보아 온 게 있는데.

할머니한테 가서 이르면 무슨 일이든 제가 잘못한 일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같은 반 친구 인자처럼, 동생한테 이름 불리고, 무시 당하면서 기죽어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더 높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왜 나이가 많으면 더 높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걸 저한테는 적용하지 않은 걸까요.

그래서 저는 동생이 괜히 시비를 걸거나, 할머니가 밥을 줄 때 똑같이 준다고 하면서 차별이 있으면 대들고, 때렸습니다.

저에게 욕을 할 때도요. 아랫사람은 높은 사람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가르친 건 할머니였습니다. 그 말에 따르면 잘못을 저지른 동생을 저는 얼마든지 야단치고 때려서 가르쳐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환하게 밝아 올 무렵, 저는 배낭을 싸들고 나왔습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랐습니다. 새벽이라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양복을 차려 입은 아저씨, 바쁘게 구두 소리를 내며 출근하는 아가씨들. 시장은 아직 다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어요. 배낭을 메고 이리 저리 걸어다니는 아이는 저 뿐이었습니다.

아직 모이기로 한 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나와 집까지 걷던 길을 되짚어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직 캄캄해서 전등불이 켜져 있는 게 꼭 그 시간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골목을 지나서, 독서실까지 가는 데 천천히 걸었는데도 이십 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독서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총무가 집에 가는 날이었는지 차고의 셔터 문도 내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주유소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친구 집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리 옆으로 주욱 내려가다가 다른 다리가 하나 더 나오기 전 개천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그 집이 바로 영순이네 집이었습니다.

안에서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어요. 영순이 아버지의 트럭이 바깥에 있는 걸로 보아 아침 식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유, 왜 또 그걸 입었어? 내가 다려서 옷걸이에 걸어 놨잖아!

낯익은 영순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영순이는 아직 자고 있는지 방에 불이 꺼져 있었어요. 창문을 두들겨 볼까 하다가 방해가 될까 싶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나는 거리를 헤메고 다녔습니다. 다리가 아파 올 무렵에야 학교에 갔습니다.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교실은 조용했습니다. 책이나 읽을까 했더니 문이 열리고 미희가 들어왔습니다.

? 53. 너 이시간에 왠일이야?

. 좀 일찍 나왔어.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들어왔습니다. 모두 밝은 얼굴이었죠. 공식적인 외박.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할만큼 물들지 않은 순진한 얼굴들. 그저, 모여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때니까요.


   20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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