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 어제 안젤라가 저 때문에 울었어요. 무슨 얘기 끝에, 어릴적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차분한 사람이예요. 제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 바람에 저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죠.

' 여기가 너무 아파요.'

안젤라는 길다란 손가락을 포개어 가슴을 누르며 저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왜요?'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아픈 얘기를 하는데 왜 저 사람이 가슴이 아프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던 같아요.

그 순간이었어요. 그니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얼굴에 커다란 파스를 붙이고 학교에 다녔다는 얘기를 하다가 쳐다보았더니 눈이 빨개져 있었어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니가 나 때문에 우는 것 같아서,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이없게도 왜냐고 묻는 제 말에 급히 크리넥스를 한장 뽑더니 눈가를 누르며 흑, 한동안 흐느꼈습니다.

나 때문에 저사람이 우는구나 싶어서 많이 미안했어요.

 

'그렇다고 우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저 때문에 울지 말라고 하고 싶었어요.

'필요해서 우는 게 아니라, 당신의 아픔이 저에게도 전해져서 우는 거예요.'

그 순간에도 여전히 이성이 우위에 있는 저는, '혹시 내가 감정표현, 감정이입을 잘 하지 못해서 암담함을 느끼고,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생각에 울음을 터뜨린 건 아닐까 싶었어요. 어이없게도. 하지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랬어요.

네네. 제가 좀 그렇잖아요. 좋아한다, 싫어한다, 힘들다, 어렵다. 슬프다, 기쁘다 이런 말 잘 못하잖아요.

 

*

 

그래 이놈아, 많이 미안했겠다!

 

나는 가끔씩 왜 그 냥반이 나한테 그랬을까 싶다. 사진 보면 그 당시 가정부가 셋이나 있고 우리 아빠는 영화관의 영사 기사였어.

죽을 고비를 세번쯤 넘긴 것 같아. 두번째로 입양간 집에서였어. 나는 지금도 물에 잠긴 고기는 먹기 싫어. 첫번째로 입양간 집에서는 먹을 게 풍족하지 못했어. 두번째 집에서는 잘 먹이는 편이었는데 무 소고기국이 나왔는데 거기 있는 소고기를 다 건져먹고 급체를 했어.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해서 날 입양보낸 이모란 사람을 엄마가 불렀는데, 그냥 내다 버리라고 했지. 다행히 우리 엄마가, 이 양반이 정이 있어서 동네 돌팔이 한의사를 불렀어. 그 사람이 어떻게 손을 써서 살았지.

두번째는 쥐약때문이었어. 우리 집을 들어서면 대문이 있고 대문을 열면 중간문, 다음엔 디딤돌이라고 그러나? 그걸 딛고 올라가면 마당이 있고 그 다음에 마루가 있거든. 왼쪽에 커다란 쌀통이 있었어. 다라이로 된 통 위에 나무를 얹고 또 그 위에 쌀을 얹어놨었어.

밖에 갔다 왔더니 보름달 빵이 거기 있는거야. 나는 학교에서 주는 곰보빵을 더 좋아했지만.

배고픈데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먹었지. 그리고는 기억이 안나. 위세척 해서 살아났겠지.

 

사람이, 처음 맞으면 공포스럽지만 계속 맞으면 내성이 생기지. 그래, 때리나보다 하는 덤덤함. 맞는델 계속 맞게되지.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하도 맞다보니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 내가 그냥 그때 죽어버렸어야 하는데. 쥐약 먹었을 때 가버려야 했는데.

 

으아 선배. 쥐약 먹으면 얼마나 힘들게 죽는다구요. 내장 다 녹고 피똥 싸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그게 어른이니까 그렇지. 쥐약 먹고 까무러졌을때는 아무것도 몰라!

내 인생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꾸 그때 생각이 나. 그때 죽어버렸으면 이런 꼴 안보고 살아도 되는데.

 

그때 안 죽은게 다행이에요. 그랬으면 못 만났을 뻔 했잖아요.

 

안 보고 싶은 사람이 몇 있지. 그때 끝냈더라면.

내 친구가 그러더라. 참 내 팔자가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디 경치 좋은데서 죽을라고 그랬다니까, . 너 그러면 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그냥 살아! 하더라. 얼마나 끔찍해 다시 태어나서 처음부터 다시 살려면.

 

그러니까요. 그냥 한번에 살고 끝내는게 낫죠.

 

뭐 이러냐. 누구는 어린 시절이 제일 행복한 때라는데 우리는 왜 그런거야, 대체! 두들겨 맞고 굶고 말야.

 

쥐구멍에도 볕들 날 온다던데. 우리도 좋은 날 오겠죠. 어릴때 안 좋았으니 나이 들어 차차 좋아지겠죠.

 

내가 나이가 몇인데. , 젊었을 때 돈 많이 벌어놔라. 여자들은 돈 벌 수 있는 나이가 정해져 있어. 남자들은 늦게까지 일하지만, 여자들은 그 시기 지나면 못 벌어.

 

난 니가 부럽다. 놀 수도 있고. 편해보인다.

 

부럽긴요 선배. 저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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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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