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2020. 8. 26. 04:39


촉촉한 것이 코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느낌에 실눈을 뜬다.
의자 위에서 잠든 야옹이가 어느 새 베게맡에 와 있다. 
코를 내 코에 대고 흠흠 냄새를 맡은 뒤 그르릉 그르릉. 
비몽사몽,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정월 초열흘에 태어난 아이는 윗목에 놓였다. 
스무살 무렵까지 겨울이면 손이 시퍼랬다. 
목 아래 받쳐준 수건 위 젖병을 빨다가 잠이 들었다. 


남동생과 투닥거리는 나를 방으로 부른 할머니는 손목에 칼을 들이댔다. 
손목쟁이 한번 더 펄렁거리면 잘라버리갔어. 
지금 자르란? 


마당 한구석 흰둥이 집에 들어가 잠이 든다. 
합판에 빨간 장판으로 지붕을 댄 집은 아늑했다. 
새끼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틈을 파고들면 스르르 눈이 감겼다. 
옆에 있어도 뭐라 하지 않는 흰둥이가 좋았다. 


어느날 장독대 위

내가 들어가 놀던 커다란 대야에 

흰둥이가 입을 벌린 채 물에 잠겨 있었다. 
옅은 피비린내가 났다. 
속이 울렁거렸다. 


빨간 지붕 집에 혼자 기어들어간다. 
까무룩,  잠이 든다.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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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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