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유감

습작 2018. 5. 21. 23:09

새벽에 본 '통일 전망대' 러시아스러운 인형극-특유의 느낌이랄까. 미국쪽의 것과는확연히 다른 인형들의 얼굴 생김, 재료는 부족하지만 부족함을 손으로 때우는, 많은 노동력을 들여 여러 컷을 찍은 후 이어붙인 방식, 교훈적인 내용-과 북한말 한마디. 귀엽게 생긴 인형들이 내게는 익숙한 평안도 사투리로 말을 하니까 웃겼다. 귀엽기도 하고.'전구''형광등'에 관한 믿기지 않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지만, '햄버거'를 이북에서는 뭐라고 할까? '고기 겹빵' 이다. .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우리 말로도 충분히 외래어를 바꿔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굳이 외국어를 그대로 쓰지 않더라도. 그러면 샌드위치는 뭐라고 하지? 샌드위치도 고기겹빵인데. 햄버거는 둥근 고기겹빵, 샌드위치는 네모 고기겹빵. 아님 두꺼운 고기겹빵, 얇은 고기겹빵이라고 하면 안될까?

티브이를 보면서, 자주 놀란다. 토씨와 맺음말만 빼면 다 한자와 영어인것 같아서. 그것도, 요즘에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기어코 외국어를 갖다 쓰는 것 같아서. 핑크색 팬츠를 매치시켜 입으면 한결 엘레강스하죠. 분홍색 바지를 같이 입으면 한결 우아하죠. 그러면 안돼? 따지고 보면 이것도 한자들인데, 순수 우리말을 발굴해 내지는 못할 망정...심지어 얼마전에 '빅한' 셔츠라는 얘기도 들었다. 왠 빅한? 한글날 특집이라며 이정동 디자이너가 레이싱카에 태극기와 함께 한글 흘림체를 입힌 것을 보았는데, 아나운서의 맺음말 때문에 김이 팍 샜다. 코리아팀이랜다. 젠장.                                                                     이러다가 대한민국은 없어지고 코리아만 남는 거 아냐?

'나는 한국인이다' 라는 글귀와 태극기를 단 한국출신 스웨덴인 입양아 최명길. 자신의 이름을 '최고의 밝은 길'이라 풀이하며 친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자신이 걷는 길과 딱 맞는 이름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은 길하다라는 뜻일 가능성이 더 많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한국 국적으로 레이싱대회에 참가하면서까지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눈물겹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우리말 지키기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글과 더불어 다른 우리것들도.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게 해 주는 그 무엇.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통일이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우리말은 참으로 풍요로워질 것 같다. 지금 홍수처럼 들어와 사용하는 외래어도 북한의 풍부한 우리말로 대체되고, 양쪽의 언어가 조금씩 섞여가면서 새로운 단어들로 풍부해져서 더욱 발전하겠지.          

    러시아어-조선어 사전에는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얼음보숭이'가 있다. 처음에는 얼음보숭이가 뭐야? 하고 촌스럽다고 웃었지만, 왜 아이스크림은 세련되고 얼음보숭이는 촌스럽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북한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있는데. 부끄러워 해야 한다. 우리말로 바꿔보려는 노력도 없이, 편하다는 이유로 생각없이 외래어를 쓰는 행동을. 안쓰면 자꾸 사라지는 것이 말인데, 자꾸 쓰고 만들어 내야 한다. 발굴해 내야 한다. 가끔 슬픈 단어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슬픈 단어 '도우미'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처음에는 참으로 순수(?)하게 출발했지만-이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것이 대전엑스포였던가 그랬다. 행사진행요원을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이제는 변질되어 노래방 도우미, 가사도우미, ** 도우미, 심지어 사정도우미(!)까지 생겨났다. 도우미라는 말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도우미'를 그저 그런 하급 단어의 이미지를 가지게 했다는 거다. 기껏 찾아냈더니 이상한데다 쓰고 있다. 언제 나온 방송인지는 모르겠지만 팔도 사람들이 나와 사투리로 어떤 단어를 설명하면 그걸 듣고 맞추는 프로가 있다. 며칠전에 봤지만 한창 활동중인 아나운서를 갓 입사한 신인이라고 소개했고,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앳되 보이는 걸로 봐서는 몇년 전에 만든 거구나, 생각할 뿐. 제주도 사투리에 강원도, 부산,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 제주도를 빼고는 비교적 잘 알아들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과 달리, 충청도 빼고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강원도의 '-래요'를 비롯, 충청도의 '-', 전라도의 ' -했어라우' , 경상도의 '-' 같은 지역별 종결어미와 특유의 억양 말고도 사투리는 각자의 단어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모르는 단어가 어찌나 많던지.우리말이 풍부해지려면 사투리를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앙정부, 권력층 중심 서울 중심의 표준어 말고도 각지에서 내려오는 말들을 좀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부추-정구지-. 부추전 정구지찌짐 솔부침. 얼마나 다양한가 말이다. 사투리로 우스갯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에 '개고기 드십니까?'를 충청도 사투리로 단 두자로 줄일 수 있다는 걸 봤다. '개 혀?' 보고 미친듯이 웃었는데, 정작 충청도 출신인 친척분은 그게 아니랜다. 개고기는 '가이고기'이고, 드십니까는 '먹유?'니까 '가이고기 먹유?' 가 맞는 말이랜다.                                            

내가 영어를 써 놓고도 문법적으로 완벽한지 알 수 없듯이(영어가 모국어는 아니니까), 사투리에도 그 지역 사람이 아니니까 맞는 말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나 보다. 우리말 만큼 사투리가 풍부한 언어가 있을까. 영토는 좁지만, 높은 산과 바다 때문에 지역 언어가 더 발달했던 듯 하다. 발음도 조금씩 다르다. 이북(북한보다는 이 말이 더 자연스럽다)에서는 ''''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남한 사람들에게는 '거저''고조'로 들리는 모양이다. '오로지'와 같은 단어에서는 ''가 러시아어의 연자음 발음처럼, 약간은 'z'를 발음하는 것처럼 혀가 우리말 ''에서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지 않나 싶다. 연변쪽에서는 '' '''' 라고 한다. 이것도 ''''에 가깝게 발음하는 현상에서 온 걸까? 만약 사투리를 배울 수 있다면, 제주도 사투리를 배워보고 싶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언어. 여성의 입김이 쎈 제주도. 뭔가, 여성성이 많이 살아있는 언어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말로 원샷은? '나불게'

해외여행은 금지되고 제주도가 제일 멀리 갈 수 있는 곳이었을 때, 이국적인(?)사진으로 가득찬 제주도 안내 책자 뒷편의 제주도 사투리 설명을 주의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말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여덟살이나 되었을까. 처녀-비바리, *-강알, 할머니-할망, 할아버지-할아방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단어 말고도 아래 아로 가득찬 문장들도 만히 있었다. 마치 해외여행 가이드북의 '언어편' 처럼. 얼마입니까-얼마우꽈? 그렇게-경 그렇게 하셨습니까-경 햄수꽈? . **마씨.

제주도 수학여행 갔을 때. 완전히 두 가지 말을 하는 식당 종업원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저기요... 나물 좀 더 주세요, 했을 때는 네. 하며 표준어를 쓰더니, 주방 입구에 대고 '할망, **좀 더 줍서!' 하는 것이었다. 정말 배우고 싶은 언어(?). 제주도 말은.


                                                           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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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빠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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